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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그래 너니?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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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그래 너니?

글과글사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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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 글과글사이 세계문학 영미시선집 시리즈 018 | “나는 깊게 살고 싶었다. 삶의 정수를 한껏 빨아먹고 싶었다. 아주 억세게 스파르타식으로 살면서, 삶이 아닌 모든 것을 궤멸시키고 싶었다. 삶을 널찍이 잘라서 바싹 깎아 다듬고, 그것을 궁지에 몰아넣어 기약분수로 축소시킨 다음에, 보잘것없는 삶으로 드러나면 보잘것없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여 그 보잘것없는 삶을 세상에 알리고, 혹시 숭고한 삶이라면, 그것을 몸소 경험으로 체득하여, 다음 소풍 때는 그 삶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 《월든 혹은 숲 속 생활》(Walden, or The Life in the Woods, 1854)에서, 소로 자신이 숲으로 들어간 이유를 적은 대목이다. 1845년 3월부터, 소로는 에머슨의 집에서 약 2.5km 떨어져 있는 월든 호수(Walden Pond) 근처, 에머슨 소유의 땅에다 손수 자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에 입주하여 1847년 9월 6일에 나올 때까지 2년 2개월 2일간의 기나긴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강가에다 움막을 짓고 한가롭게 쉬며 독서를 즐겼다는 하버드 동창 채닝의 전례를 따라서 그리 한 것이었으나, 소로의 월든 생활은 그 의도와 목표에 있어서 아주 남다른 실험이었다. 1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는 《월든》에는 소로 자신이 직접 밭을 일구어 곡식을 심고 수확해서 일부는 먹고 일부는 팔아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한 과정에 대한 세목들부터, 철 따라 변하는 자연의 풍경, 사냥, 낚시와 독서 같은 일상적 경험들, 당시 사회의 물질주의, 부패정치, 노예들이나 노동자들에게 자행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리고 초월주의 철학자로서 직관적 지식, 개인의 의미, 개인과 우주의 관계 등에 관한 심각하고 진지한 철학적 명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글이 망라되어 있다. 소로의 숲 속 생활은 힘겹고 불편하고 고독한 삶, 그렇기에 더더욱 금욕과 자기절제를 요구하고 또 감수해야 하는 삶이었다. 이와 같은 소로의 자발적으로 간소한 삶, 소박한 삶의 기록이 《월든》이요, 그의 시편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적인 걸작으로 공인되어, 생태환경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책이 되었다. 글과글사이 세계문학 영미시선집 시리즈 제18권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시선 《월든, 그래 너니?(Walden, Is It You?)》는 소로의 걸작 《월든 혹은 숲속생활》(Walden, or The Life in the Woods, 1854)에 수록된 단편 〈월든, 그래 너니?〉를 비롯하여 32편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영어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간소한 삶, 소박한 삶의 기록” 지상에서 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지상에서 나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부젓가락과 부삽을 들고 가며 까드락거리다 솥을 때려서 덩덩 울려 퍼지는 소리, 이 누옥(陋屋)을 빠져나가 그 소리로 동양의 절을 짓는 듯하다. 처음에는 소 방울 소리 같았다, 바로 근처 자작나무숲에서 광야를 넘어 퍼져가는 소리, 몇 해 전에 꽃을 따며 한여름 시간들을 보냈던 곳, 참 편안하고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곳으로. They Who Prepare my Evening Meal Below They who prepare my evening meal below Carelessly hit the kettle as they go With tongs or shovel, And ringing round and round, Out of this hovel It makes an eastern temple by the sound. At first I thought a cow bell right at hand Mid birches sounded o'er the open land, Where I plucked flowers Many years ago, Spending midsummer hours With such secure delight they hardly seemed to flow. 양심(일부) 내가 흠모하는 삶은 지면(地面)이 단순하고, 촘촘하지 않게 여기저기 아담한 산이 있고, 영혼이 아주 건전하여 병적인 양심에 얽매이지 않고, 더도 덜도 말고 자신이 만나는 우주와 어울리는 삶. 나는 성실한 영혼을 흠모한다. 아무리 기쁘고 또 슬퍼도 술독에 빠지지 않고, 다음날이면 생기를 되찾는 영혼, 일흔의 비극이 아니라 한 비극을 사는 영혼을. 또한 지킬만한 양심, 울지 않고 웃는 양심, 슬기롭고 한결같고 늘 준비되어있는 양심, 뜻밖의 결과에도 변함없이 칭찬하는 양심, 의심이 난무하는 큰일들에 두루 단련되어있는 양심을 흠모한다. From Conscience I love a life whose plot is simple, And does not thicken with every pimple, A soul so sound no sickly conscience binds it, That makes the universe no worse than 't finds it. I love an earnest soul, Whose mighty joy and sorrow Are not drowned in a bowl, And brought to life to-morrow; That lives one tragedy, And not seventy; A conscience worth keeping; Laughing not weeping; A conscience wise and steady, And forever ready; Not changing with events, Dealing in compliments; A conscience exercised about Large things, where one may doubt. 월든, 그래 너니? 나의 꿈은 시(詩) 한 행(行) 장식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월든에 사는 것이 신과 천국 가까이 다가가는 길. 나는 이 호수의 돌 기슭이요, 그 위로 지나가는 산들바람. 나의 우묵한 손바닥에는 호숫물과 모래밭을 담고, 나의 생각 속에는 가장 깊은 유원지가 황홀히 펼쳐져 있나니. Walden, Is It You? It is no dream of mine, To ornament a line; I cannot come nearer to God and Heaven Than I live to Walden even. I am its stony shore, And the breeze that passes o'er; In the hollow of my hand Are its water and its sand, And its deepest resort Lies high in my thought. 나는 가을 햇살 가끔 인간은 자기 안에서 자연을 느낀다 ―그의 부성(父性)이 아니라 모성(母性)이 몸속에서 꿈틀거리다가, 불멸의 그녀와 함께 불사신이 된다. 때때로 자연은 우리와 혈족임을 주장하며, 자신의 혈관에서 혈구를 뽑아 우리 혈관에 몰래 주입한다. 나는 가을 햇살, 가을 질풍과 함께 나의 경주는 시작된다. 개암나무는 언제 꽃을 피울까, 또 내 오두막 아래 포도는 언제 익을까? 중추 명월 아니 사냥꾼의 달은 언제나 나의 한밤을 한낮으로 바꿔주려나? 나는 온통 노랗게 말라 비틀어져, 속까지 무르익는다. 너도밤나무열매가 나의 숲 속에서 떨어지고, 겨울이 나의 들뜬 마음속에 몰래 숨어있고, 시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로 내 슬픔의 견고한 음악 소리. . . I am the Autumnal Sun Sometimes a mortal feels in himself Nature ―not his Father but his Mother stirs within him, and he becomes immortal with her immortality. From time to time she claims kindredship with us, and some globule from her veins steals up into our own. I am the autumnal sun, With autumn gales my race is run; When will the hazel put forth its flowers, Or the grape ripen under my bowers? When will the harvest or the hunter's moon Turn my midnight into mid-noon? I am all sere and yellow, And to my core mellow. The mast is dropping within my woods, The winter is lurking within my moods, And the rustling of the withered leaf Is the constant music of my grief. . .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62년 5월 6일, 44세라는 창창한 나이에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음에 임하여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이 ‘큰사슴’(Moose)과 ‘인디언’(Indian), 두 마디였다. 소로가 자신의 죽음을 ‘멋진 항해’에 빗대며 떠나자고 했으니(“Now come good sailing”), 큰사슴과 인디언은 일단 그 여행의 좋은 길동무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오늘의 관점에서, 그동안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해 북미 대륙에서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큰사슴, 서구인들의 총칼과 그들의 문명에 속수무책으로 거의 완전히 동화되어 이제는 겨우 명맥과 흔적만 남아있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서글픈 운명과 인디언문화를 떠올리면, 소로의 마지막 두 마디는 참으로 씁쓸한 예언으로까지 비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마흔넷 짧은 인생을 살다 갔으나, 교사, 초월주의 철학자, 시인, 반-노예제 투사, 자연과학자, 생태학자, 인디언문화 연구자 및 전달자로서 분야마다 주목할 만한 족적을 남겼으니, 그의 인생은 자못 위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소로가 자신의 죽음을 ‘멋진 항해’에 비유한 것은 어쩌면 그 부끄럽지 않은 마흔넷 짧은 인생에 대한 자평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죽은 이는 말이 없고 그를 계속 살아있게 하는 것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소로의 유해는 처음에는 던바 가족묘지에 묻혔다가, 훗날 직계가족들의 유해와 함께 슬리피 할로우 묘지(Sleepy Hollow Cemetery)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20년 후, 소로의 은사 에머슨의 유해가 묻힌 곳도 슬리피 할로우 묘지였다. - 옮겨 엮은이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과 문학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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